그 길이 그 길[익산 무왕길]

2021. 2. 20. 23:34전라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을 가서
밤마다 무얼 가지고 서동의 방에 놀러간다.

향가 서동요의 내용은 대충 이런게 아닐까. 2021년 2월 20일 토요일. 무왕과 선화공주 전설의 고향, 익산 쌍릉. 소왕릉에서 대왕릉으로 간다. 200m쯤 떨어져 있는 두 능을 쌍릉, 익산 쌍릉이라고 한다.이번이 세번째인가. 친숙감이 든다.

자, 익산토성으로 가자. 어느쪽이지? 이정표도 없고, 사람들도 잘 모른다고 한다. 저쪽 길인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그쪽 길로 들어선다. 한적한 시골 마을 골목도 지나고, 논밭 사이로 이어지는 길. 가다 보니 전봇대에 매달린 화살표들이 보인다. 반가움과 안도감.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순례길이란 글자와 달팽이 그림으로 디자인한 이정표에는 어느 쪽에서 어느 쪽으로 가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 디자인에는 공을 들인 티가 나지만 본연의 안내가 소홀한 이정표. 나름대로 판단한 방향과 달라지는 화살표 방향. 그래도 믿고 따라가 보자.

한참 만에 친절한 이정표가 나타난다. 순례길이긴 하나 오늘의 내 길이 아니다. 이정표가 엉성한 건지. 내가 어설픈 건지. 허허. 그러나 낭패랄 건 아니다. 이 길은 이 길대로 분위기가 있지 않은가. 그저 좀 돌아가면 되는 것.

지금부터는 달팽이 이정표는 찾지 말자. 왕궁리유적지에서부터는 자동차 도로 이정표와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바탕으로 길을 정한다. 그래, 꼭 화살표로 정해 놓은 길만 고집할 일이 있을까. 익산 무왕길이라고 했던가. 따지고 보면, 이 벌판에서 다 그 길이 그 길 아닐까.

언제 보아도 단정하고 예쁘게 솟아 있는 미륵산 아래 널찍하게 자리한 미륵사지. 꽤 오랫동안의 발굴 조사와 정비작업이 마무리되었고, 한쪽에 국립박물관도 들어섰다. 여기에서는 익산토성으로 가는 순례길을 찾을 수 있겠지, 기대를 해 봤지만, 역시나, 아무도 모른다. 이정표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데 보이질 않는다. 관광안내소에서도 모른다. 이리저리 물어봐도 신통한 답이 없다. 가장 그럴 듯한 말을 좇아 금마 면소재지 입구까지 되짚고 나서 익산토성 이정표를 따라간다.

익산토성. 나지막한 산에 남은 흔적을 살려 복원해 놓은 포곡식 산성. 목재로 만들어 세운 전망대에서 사방 벌판을 둘러보고 작은 산성을 한 바퀴 돈다. 아, 미륵사지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보인다. 허허. 그건 그렇고, 만사불여튼튼이라. 산성에서 내려와 다시 길을 물는다. 잠깐만에 처음 그 자리에 와서 땀을 씻는다.

익산 쌍릉-지아골-구기 마을-창평 마을-왕궁리유적-고도리 석조여래입상-선화공원(금마)-구룡 마을-미륵사지-익산토성-쌍릉. 22.86Km.

조선 정조 임금이 수원에 성을 쌓고 신도시를 건설했다면, 백제 무왕은 그보다 훨씬 먼 옛날에 익산 땅에 새로운 도읍을 닦았다. 오늘, 그때의 흔적을 더듬어 길을 헤맨다.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한강 유역에 나라(한성백제)를 세웠고, 후에 금강 유역 공주(웅진)로, 더 내려와 부여(사비)로 도읍을 옮겼다. 말년에는 더 내려와 익산 땅에 새로운 도읍을 닦았다. 아, 백제 왕국은 금강 물줄기를 따라 바다로 흘렀단 말인가. 그러면서 바다 건너에도 근거를 마련했던 것인가.

쌍릉: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두 기의 능. 대왕릉은 무왕의 능으로 밝혀졌고, 도굴 상태가 심한 소왕릉은 설화를 근거로 선화공주의 것으로 추정. 사적 제87호.

익산 왕궁리유적: 백제 무왕(600~641 재위) 때 건설한 왕궁 터. 백제 말에서 통일신라 시기에는 사찰로 바뀌었었다고 한다. 1989년부터 시작된 발굴 조사에서 궁궐 담장, 정전, 정원, 후원, 화장실, 공방 등이 있었음이 확인됨. 사적 제408호. 오층석탑은 국보 제289호.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잘 정비된 궁궐 터를 대충 둘러본다. 엄청나게 너른 규모에 놀라고, 화장실 터에 앉아 있는 인형을 들여다보면서 킥킥거리다가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을 찾아간다.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금마면 동고도리 들판에 200m쯤 거리를 두고 서 있는 두 석상. 동쪽이 여자, 서쪽이 남자라고 한다. 둘 사이에 옥룡천이 흐르기 때문에 만나지 못하다가, 음력 섣달이 되어 냇물이 꽁꽁 얼어붙으면 밤중에 서로 건너와 끌어안고 회포를 풀다가 새벽닭이 울면 떨어져 제자리로 가 선다고 한다. 머리부터 받침돌까지 하나의 돌로 되었음. 고려 때 양식이라고 한다. 보물 제46호.

미륵사지: 익산시 금마면에 있는 동양 최대의 사찰 터. 601년(백제 무왕 2)에 창건되었고,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 국보 제 11호 석탑과 보물 제236호 당간지주 등 엄청나게 많은 유물과 유적이 발굴되었음.

익산토성: 익산시 금마면 오금산에 있는 백제 때 산성. 오금산성 또는 보덕성이라고도 함. 서동이 다섯 덩이의 금(五金)을 얻었다고 해서 오금산이란다. 전설에, 서동과 첫날밤을 보낸 선화공주가 황금을 내어 주면서 팔아오라고 했다. 서동은 마를 캐는 곳에 이런 것이 많다며 금 다섯 덩이를 신라 왕궁으로 보냈고, 진평왕은 서동을 사위로 인정하였다. 사적 제92호.

백제역사유적지구: 주변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하여 문화적 발전이 절정에 이른 백제 후기(475~660)의 유산으로, 당시 도읍들과 연관이 있다. 공산성, 송산리고분군(웅진 왕도 관련), 관북리 유적, 부소산, 정림사지, 능산리고분군, 나성(사비 도성 관련), 왕궁리 유적, 미륵사지(금마저 왕도 관련).* 안내판 설명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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