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은 나의 교실[땅끝]

2021. 3. 2. 21:30전라




2021년 3월 2일 화요일 아침. 한 송이 두 송이 눈발이 날린다. 온 세상에 하얀 기운이 가득하다. 하얀 가루를 뒤집어쓴 푸른 솔잎은 보석 떨기처럼 찬란하다. 잎 떨군 나뭇가지도, 마른 풀잎도, 산도, 들도 하얗고 하얗다. 어제 종일토록 내리던 봄비가 밤새 눈으로 바뀐 것이다. 봄을 여는 봄비요, 봄을 여는 서설이다.

새학년이 시작되는 오늘, 학교 대신 땅끝으로 간다. 퇴직 후 첫 출근이다. 땅끝에서 새 출발이다. 윤아는 오늘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집에서 천 리를 넘게 달려 해남군 땅끝마을에 왔다. 땅끝마을 못미처 송호리에서 김치찌개 점심상을 받고 새삼 놀란다. 전라도 음식이 처음이기라도 한 듯. 푸짐하고, 맛 좋고, 정겨운 밥상이다.

땅끝마을 주차장에서 바닷가로 길을 잡는다. 둘레길 열풍이 여기라고 비켜 가랴. 벼랑에는 나무 계단을 설치하여 갈두산 아래 바닷가로 길을 만들고, 쉼터를 만들고,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친절한 이정표를 세웠다. 갈두산 꼭대기 전망대는 오래전에 생긴 것이다.

땅끝마을-땅끝탑-갈산마을-땅끝오토캠핑장-망추봉-땅끝전망대-땅끝마을. 겹친 걸음 포함하여 8.19Km.

갈산마을에 후박나무숲과 당할머니집이 있고, 전설이 있다. 고산 윤선도가 어란진에서 배를 타고 보길도를 가려는데 풍랑이 일기 시작한다. 어떤 할머니가 나타나서, 내가 물을 마시고 쉴 곳을 만들어주고 가라. 윤선도가 후박나무숲에 당집을 짓고, 정성껏 제사를 지내고 나니 풍랑이 멈췄다. 갈산마을 후박나무숲은 방풍림 역할뿐 아니라, 숲에 머무는 신이 온갖 재해로부터 마을 사람들을 보호한다고 믿는 신앙의 대상으로 전해지고 있어 문화사적 가치가 있단다. 1960년대 태풍으로 소실된 것을 2006년에 복원하였다고. 마을 집 울 가에, 텃밭 가에 매화꽃이 활짝 폈다. 여기 한 그루 저기 한 그루, 있는 듯 없는 듯.

한 가지 더. 땅끝 사자포구에 달마산 미황사 창건 설화가 있다. 신라 경덕왕 8년(749)에 이곳 사자포구에 돌로 만든 배가 도착했다.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40성중, 16나한상, 탱화 등과 함께 검은 돌이 실려 있다. 사람들이 불상 등을 모실 일을 의논하는데 검은 돌이 갈라지면서 검은 소로 변한다. 그날 밤 의조화상의 꿈에 금인(金人)이 나타나서, 나는 (인도에 있는) 우전국의 왕이오. 불상과 경전 모실 곳을 찾아다니고 있오. 여기서 달마산을 바라보니 1만 부처님이 보입니다. 검은 소에 불상과 경전을 싣고 가다가 소가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곳에 모시도록 하오. 지금의 미황사 자리에서 소가 '미' 하고 크게 울고는 누워서 일어나지 못한다. 절을 짓고,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와 금인의 '황홀한 색'에서 뜻을 취하여 미황사라고 했다. -미황사 사적비(1692년, 숙종18) 일부 요약.

산천은 나의 교실.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고, 생각나는 대로 생각하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면서 뭔가 알 듯 말 듯하다. 그렇게 걷는다. 세상살이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