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충주 수주강변길]
2021. 4. 5. 20:47ㆍ충청
카톡! 카톡!
엊그제, 참으로 오랜만에, 참으로 멀리에서 오는 카톡을 받았다. 30여 년 감감무소식에 간 곳을 모르던 친구. 야,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냐. 그래, 반갑다. 진짜 오래간만이다. 미안하다. 어디냐. 잘 지내고 있지. 내년 초에 귀국한다. 그때는 볼 수 있는 거냐. 그럼. 건강해라.
함께 졸업한 애들이 50명은 되었던가. 조그마한 산골 국민학교(초등학교), 동창 녀석 하나. 남자애들 모두 제대하고 난 어느 동창회 때, 부산에서 올라왔었지. 그러고 나서 2~3년 지난 다음부터 연락 두절. 형제들도, 사촌들도, 그 누구와도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배를 탄다던가, 어렴풋한 짐작이 있는 정도였다. 수주 강 건너 자사골에 살던 친구.
2021년 4월 5일 월요일. 오후에 잠깐, 수주 강변을 걷는다. 충주시 대소원면 수주강이다. 찰칵, 찰칵. 이쪽저쪽 풍경을 담아 녀석에게 보낸다. 참 좋은 세상이다. 지금 그쪽은 한밤중일 테니까 자고 나면 열어 보겠지. 옛날 생각이 아련하겠지. 아니, 또렷한 것들도 꽤 있으리.
학교 다닐 때 단골 소풍 장소였고, 때때로 찾아와 멱도 감고, 고기도 잡고, 삿대를 저어 강을 건너고, 아래윗마을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던 강변. 한겨울 강물이 꽁꽁 얼어붙은 얼음판 위에 모닥불도 피웠고, 어느 여름철에 횃불을 들고 밤고기를 잡는 어른들을 따라다닌 적도 있는 수주강.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이 몇 번인가. 곱디고운 모래밭과 맑디맑은 물과 예쁘디예쁜 조약돌들은 어디로 갔나. 물은 지금도 맑은 편이라고 해야 하나. 2021년 봄이 익어가는 지금 와서 보니, 마른 갈대가 우거진 풀밭 여기저기에서 푸른 안개를 풍기는 버드나무가 물결따라 흔들린다. 건너편 산비탈에는 진달래 분홍빛이 한창이고, 산벚나무 하얀 꽃이 점점이 안개처럼 부풀고, 어린 연둣빛이 온 산 가득 은은하게 배어난다. 하천 정비가 거듭되었고, 둘레길 열풍이 여기에도 불어왔다. 그럴듯한 이름표도 달았다. '걸으면 기분 좋은 수주 강변길'
기분 좋게 걷는다. 날씨도 좋고, 산과 물과 돋아나는 풀빛과 마을 풍경, 어느 것 하나 빼놓 수 없이 모든 게 좋다.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는 길이다. 하얀 꽃 말고도 노란 꽃을 피운 토종 민들레들이 발길을 잡고, 앉아 보라고 한다. 더없이 맑은 빛으로 반짝거리는 작은 몸짓들. 건너편 옥녀봉, 귓돌바위와 여울물, 늘깨, 수주마을 앞 강 건너 바위 절벽. 저 건너 저 마을이 녀석이 살던 자사골이다. 어느 겨울엔 옥녀봉에도 올랐고, 녀석네 사랑방에서 밤새 떠들기도 했었지.
또 만나네요. 아까 지나쳤던 아저씨 한 분이 말을 걸어온다. 안녕하세요? 여기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예, 한 5년 됐습니다. 저기 저 하얀 집 옆으로 살짝 보이는 집입니다. 공기도 맑고, 경치가 좋아 자리를 잡았습니다. 보세요. 얼마나 좋습니까. 순간,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공감하는 나를 느낀다. 요 위 학교 있는 동네에서 자랐으니까 여기도 고향인 셈이지요. 저기다 차를 놓고 오셨나 봐요. 옛날 생각 많이 나시겠어요. 지금은 어디 사세요. 시내요. 이렇게 좋은 곳을 두고 왜.
몇 학년이었던가. 소풍 때였을 거다. 무릎을 넘치는, 마을 앞 여울 물속에서 맨손으로 고기를 움켜 건네주던 녀석. 사진을 보면서 많은 걸 추억하겠지. '걸으면 기분 좋은 수주 강변길'. 거리는 얼마 안 되지만 얼마든지 길게 걸을 수 있는 길. 녀석을 추억하고, 나를 추억한다. 산, 물, 하늘, 풀과 나무, 돌멩이 하나까지, 어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빈틈없이. 추억 아닌 것이 없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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