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1. 18:21ㆍ경상
2023년 7월 21일 금요일. 해인사 금선암에서 눈을 뜨다. 중복 날이고, 폭염주의보 예보가 있는 날이지만, 이른 아침 산속 공기는 초가을인 듯 선선하다. 아침 공양을 마치니 일곱 시를 막 넘어선다. 배낭을 메고 나선다. 저 건너 남산제일봉으로 가자.
그래, 한여름엔 산속 푸른 그늘이 제일이지. 무쇠라도 녹일 듯 이글거리는 햇볕의 열기도 산들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들을 뚫지는 못한다. 온몸을 흠뻑 적시는 비지땀은 시원하고 개운한 맛을 준다. 산이 숨쉬는 소리가 그윽한 푸른 그늘 속은 여름철 별천지라고 할 만하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남산제일봉(1,010) 꼭대기에는 멋들어진 바윗덩이들이 모여 있다. 저마다 제멋을 하는 틈바구니에서 참나무 한 그루가 조용히 제멋을 한다. 떡갈나무인가? 제법 연륜이 느껴지는 나무 옆에 푯돌이 세워져 있다.
한참을 머문다. 사방 푸른 산 바다에 솜처럼 부풀면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흰구름과 파란 하늘. 여긴 하늘나라 신선계가 아닌가.
청량사 쪽으로 길을 잡는다. 올라온 길과는 달리 허연 바위들이 여기에 불쑥 저기에 불쑥 솟아 있는 풍경 속으로 스며든다. 저렇게, 여기저기 박힌 바위들이 매화처럼 보인다고 하여 '매화산'이라고도 한다. 한 발짝 한 발짝, 조심 또 조심, 바위도 넘고, 가파른 계단도 밟는다.
바위 언덕을 몇 넘었다. 땀을 훔치고, 물 한 모금 하면서 보니, 기가 막히는 명당이다. 하늘을 찌르는 바위 밑에, 앉아 쉬기에 그만인 바윗돌이 있고, 공기는 왜 그리 서늘한지. 그래, 푹 쉬어 보자.
아니, 이게 뭐지? 쉬면서 여유를 부리다보니,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처음인 듯도 한, 작고 둥근 열매를 잔뜩 달고 있는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볼수록 예쁘고, 신기하기도 하다. (사진을 찍어 '숲 해설'을 하는 친구에게 물었다. 후에, '정금나무'라고 답이 왔다. 더 알아보니, 블루베리와 비슷하면서 크기가 더 작은 정금나무 열매에는 안토시아닌 함유량이 블루베리보다 6배가 많고, 눈의 피로회복, 혈액 정화 작용 등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
꼭 내려가야 하는가. 청량사를 지나면서는 자동차도로다. 달마선원을 지나치고, 황산주차장을 지나치고, 버스를 기다릴까, 하다가 그냥 걷는다. 소리길로 들어서서 쉬엄쉬엄 걷고 또 걷는다. 벗어나기 싫은 세계를 꼭 벗어나야만 하는 건가.
금선암-성보박물관-치인리-남산제일봉-전망대-청량사-달마선원-황산리 주차장-소리길-금선암. 17.7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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