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1. 23:39ㆍ선비순례길
2023년 11월 첫날. 수요일. 안개도 걷히고 하늘도 벗어진다. 안동시 도산면 단천교 위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산골짝 온 세상이 울긋불긋하고, 강물은 차갑게 맑다. 낙동강 물줄기를 옆에 끼고 걷는다.
예전에 퇴계가 청량산을 오가던 길이라고 한다. '퇴계 예던 길', 선비순례길 4코스이다.
어느새 산길로 들어섰고, 정자가 나타난다. 아하, '청량산 조망대'로구나. 과연, 멀지 않은 저만치에 청량산 봉우리들이 바라다보인다. 저건 장인봉으로 건너가는 출렁다리가 아닌가. 한동안 서서, 저 여러 바위봉우리들을 오르내리던 때를 떠올려본다. 그랬었지. 그쪽으로부터 흘러오는 물이 발아래서 재잘거린다. 어서 가던 길을 가라고 한다.
호젓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땀을 훔친다. 몸과 맘이 개운하다. 학소대 꼭대기에서 구불거리는 물줄기를 따라가본다. 와~! 여기저기 산허리에, 물가에 박혀 있는 바위 절벽들은 왜 저렇게 멋진 것이냐. 산골짝을 헤집으며 굽이치는 물빛은 또, 왜 자꾸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이냐.
농암종택에 왔다. 낙동강 물가, 주변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이다. 농암 이현보가 태어나서 자란 집이고, 직계 자손들이 70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고 있단다. 2,000여 평 대지 위에 사당, 안채, 사랑채, 별채, 문간채, 긍구당, 명농당 등이 본채와 별당으로 나뉘어 있다. 엄청 넓고 크다. 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인댁 양반들과 노비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어울리며 살았을까.
본래, 농암종택은 도산서원 가까이에 있는 분천 마을에 있었다고 한다. 1976년, 안동댐 건설로 마을은 물에 잠겼고,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이전되었던 것들을 문중 종손이 여기, 한곳에 모아 놓았으며, 2007년에 분강서원을 재건하였다고 한다.
농암종택에서 2Km쯤, 굽이치는 강 상류 물가에, 산과 바위 절벽과 소나무와 물이 어우러지는, 그림 같은 경치 속에, 작은 정자가 그림처럼 앉아 있다. 고산정이다. 물은 흐르다 고이고 또 흐른다. 때론 노래도 한다.
고산정은 정유재란 때 의병장이었던 금난수가 학문과 수양을 위해 지은 것(1564년)이라고 한다.
축융봉이 가깝다고는 하나, 5코스 길을 잡으면서 미련을 버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얼마 안 가 길이 막힌다. '홍수로 길이 망가져 위험함. 임시 폐쇄함' 허허.
어떻게 할꼬. 궁리 끝에 농암종택까지 길을 되짚는다. 아까, 종택 앞에서 맹개 마을로 가는 이정표를 보았었다.
과연, 종택 앞 강물에 징검다리가 있다. 그런데 온전하지가 못하다. 그러나 망설일 일이 아니다. 주저없이 발을 벗는다. 강폭이 넓고, 물이 차고, 물살이 빠르다. 조심 또 조심, 무사히 건넌 강변 돌밭에 앉아 물기를 닦고, 신발을 신는다. 저 건너 저 바위 절벽이 학소대라는 얘기렷다. 그래, 정말 멋있다.
맹개 마을은 '생태 마을'이란다. 집도 몇 채 안 보이고, 밭갈이해 놓은, 넓지 않은 밭이 두어 뙈기 보인다. 보이는 사람도 없고, 도대체가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마을이 있고, 순례길 안내 지도에는 분명 길 표시가 있는데, 이럴 수가 있나. 너른 강변으로 들어선다. 자갈이 좍 깔렸고, 하얀 모래밭도 있다. 물 건너편에 길이 보인다.
다시 건너가야 하나. 이번엔 옷을 다 벗어야 할 것 같은데. 이리저리 둘러보고, 기웃기웃 살펴본다. 우여곡절 끝에 숲에 묻힌 채 낡은 산길을 찾았다. 헉헉 기어오르고 내려서기를 두어 번, 오래지 않아 백운지 마을에 도착한다. 처음 그 자리, 백운교가 저 아래 보인다. 뜬금없이, 반야심경 구절을 더듬거린다. 관자재보살행심반야바라밀다시조견오온개공도일체고액...
단천교-청량산조망대-건지산-학소대 정상-농암종택-고산정-농암종택-학소대 앞-맹개마을-백운지-단천교. 17.8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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