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15. 23:19ㆍ선비순례길
2023년 11월 15일 수요일. 입동이 지나고 한 주일, 초겨울 날씨가 푸근하다.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예끼마을에서 여유를 부리다. 느린 걸음으로 마을을 둘러보고, 하늘을 보고, 눈 들어 두리번거리고, 저 아래에서 호수를 이룬 강물을 내려다보다.
관광지 식당과 가게와 고택과 안내소, 보드랍게 흐르는 겨울 햇살과 상큼한 기운. 문화단지 쪽으로 길을 잡는다.
송곡고택: 평산신씨 송곡파의 종택으로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에 있다. 19세기 중엽에 지은 것으로 경상북도 시도민속문화재 제4호.
선성현 문화단지: 옛 선성현 관아를 재현해 놓은 것으로 선성산성이 건너다보이는 곳에 있다. 선성산성은 후삼국시대부터 임진왜란 때까지 방어 기능을 하였고, 3.1운동과 6.25 때도 주요 지점이었다고 한다.
문화단지를 지나 건너편 산성을 바라보면서 예안향교 쪽으로 간다. 산성은 아주 작아 얼굴을 움직이지 않고도 한눈에 들어온다. 눈길을 거두어 앞을 보니 바로 향교다. 빨간 홍시를 주렁주렁 허공에 내건 감나무 두 그루가 밭둑에 섰고, 잎을 모두 떨군 은행나무 고목이 우뚝하고, 비탈진 땅에 향교 건물들이 모여 있다.
예안향교: 1415년에 창건되었고, 여러 차례 고쳐 지었으며,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8호. 수령 500년을 넘긴 보호수, 은행나무 고목이 예스러운 멋을 더하고 있다.
향교 옆길을 기어올라 자동차도로를 건너다. 국학진흥원 앞에 선비순례길 7코스 안내판이 있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길가에 까맣고 조그마한 비석이 보인다. 온혜초등학교 예안분교장 교적비다. 그렇구나. 세월은 그렇게 흐르는 것이구나.
역시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호계서원을 보고 내려와서 수련원 건물 뒤로, 영지산 산길로 들어선다.
예안분교 교적비: 온혜초등학교 예안분교가 있던 자리에 있다. 1909년 4월 9일 개교하여 2009년 3월 1일 폐교할 때까지 7,58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고 적혀 있다.
호계서원: 퇴계의 위패를 봉안하고, 학문을 강론하기 위해 1575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높지 않고 험하지 않은 산에서, 이번에도 어김없이, 잠깐 헤매다
전망대에 올라 예끼마을 앞에서 바다를 이룬 낙동강 멋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길은 잘 나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그렇게 가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 희미해지던 길은 흔적도 없어진다. 허허, 참. 헤맬 일이 없을 것 같은 길이 아니었던가.
어찌할꼬. 되돌아 올라가긴 싫다. 잠깐 서서 방향을 가늠해 보고, 이리저리 궁리한다. 일단 좀 더 가보자.
핸드폰 지도를 열어 보고, 햇빛과 그림자 방향을 따져 보고, 지형을 살핀다. 다행인 것은 모든 잎이 다 떨어진 철이라 이리저리 살피기에도 좋고, 몸을 움직이기고, 길을 내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곧 이정표를 만나고, 옳은 길을 찾았다. 이렇게 잘 나 있는 길을 두고 엉뚱한 숲속을 헤매다니. 자주 이러는 것을 보면 타고난 무엇이려나.
기랑잎이 더러 쌓였지만 아주 편한 산길이다. 소나무가 많고, 송이 채취 기간에 입산을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자주 보인다.
산불 감시 망루가 있는 영지산 마루에서부터는 주로 내리막길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눈을 들어 보니 저기 멀지 않은 곳에 청량산이 보인다. 여기는 안동시와 봉화군 접경 지역인 것이다.
영지산에서 내려와 자동차도로를 아주 잠깐, 토계천 물가를 잠깐, 이어서 온혜리 마을로 들어선다. 노송정과 퇴계 태실, 온계종택과 500년 밤나무를 본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여유를 부린다.
진성이씨 온혜파종택 노송정: 퇴계 이황의 조부 이계양이 1454년에 지었다고 한다. 1501년, 저기 저 방에서 퇴계 이황이 태어났다고 하며, '퇴계 태실'로 부른다.
온계종택 삼백당: 1520년 무렵, 퇴계 이황의 형, 온계 이해가 노송정에서 분가하여 살던 집이고, 이인화 의병장의 생가이다. 1896년에 일본군이 불을 질러 사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타버렸고, 2011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종택 바깥마당에 수령 500년이 넘는다는 밤나무가 있다.
온계종택 바로 옆에 온혜초등학교가 있고, 밭 한 뙈기를 지나 개울 건너에 도산면 소재지 마을이다. 식당 두엇을 비롯하여 상가 간판이 몇 있는, 아주 작은 산골 면소재지 마을에 적막이 흐른다. 이 적막함 속에 소리 없이 흐르는 것은 무엇인가.
도산면 서부리 예끼마을-예안향교-국학진흥원-호계서원-영지산-온혜리(노송정-온계종택-도산면사무소). 11.9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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