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29. 22:58ㆍ선비순례길
수운정에서 고산정까지, 안동 선비순례길 아홉 개 길 중 마지막, 9코스이다. 퇴계의 문하생들이 건지산과 수운정을 오가면서 서도를 익혔고, 이숙량과 권보 등 명필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2023년 11월 29일 수요일. 수운정에서 온은천을 따라 내려온 길이 35번 국도를 만나는 지점에서 신발 끈을 묶는다. 가을 분위기를 완전히 벗어난 날씨에 아침 햇살이 포근하다. 수운정으로 가는 길을 따라가던 눈길을 거두고, 고산정을 향해 걸음을 뗀다. 그쪽은 한 주일 전에 걸어온 길이다.
이번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동차도로 갓길을 걷는 길이다. 고리재로 오르는 길가에 鄒魯之鄕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은 큼직한 바윗돌이 보인다. 맹자가 살던 추(鄒)나라, 공자가 살던 노(魯)나라. 도산에 살던 퇴계를 공자나 맹자와 같은 성인으로 우러른다는 얘기다. 그건 그렇고, 조선 선비들은 공자와 맹자, 주자를 어떤 식으로 받들었던가. 강원도 정선과 강릉 경계에 솟은 노추산에 오르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었던가.
잠깐만에 고리재에 올라선 다음부터는 계속해서 내리막이다. 길은 고리천 물길을 따라 구불거린다. 길가 작은 마을에 문 닫은 학교가 보인다. 건물은 낡았고, 마당은 손바닥만 하다. 닫힌 문 앞에 작은 비석이 있다. 온혜초등학교 가송분교장 교적비다.
1959년 2월 2일 개교하여 졸업생 485명을 배출하고, 1996년 3월 1일에 폐교하였음. 1996년 3월 1일 경상북도 교육감.
고리재로부터 4Km쯤 내려온 곳에서 고리천은 낙동강을 만나고, 물가에 마을이 있다. 가송리 중심 마을이다. 국도는 강줄기를 옆에 끼고 봉화쪽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국도에서 갈라진 길은 고산정 쪽으로 강물을 따라 흐른다.
가송리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저 아래 가송협 멋진 풍경이 코앞이다. 전망대가 나타나더니, 올라와서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라고 손짓한다.
날아갈 듯 멋들어진 바위 절벽을 양옆에 끼고 맑게 흐르는 물은 낙동강이고, 물 건너 바위 절벽 옆 물가에 멋들어진 소나무를 벗하여 앉아 있는 것이 고산정이다. 흐르는 물은 맑고, 물가 바위 절벽은 날아가는 듯하고, 정자가 자리한 곳은 아늑하다.
고산정 쪽으로 건너가는 다리 위에서 가송협 멋진 그림을 보고 또 본다. 배경을 이루는 먼산과 빈 하늘과 산촌에 흐르는 초겨울 기운. 아, 산은 무엇이고, 물은 무엇이고, 길은 무엇인가. 그 속에, 여기에 나는 무엇인가.
무엇인가, 무엇인가, 하면서 길을 되짚는다. 처음 그 자리에 왔다. 12.03Km. 그래,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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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안동 선비순례길 아홉 코스를 모두 걸은 셈이다. 총 91.3Km라고 하는데 실제 걷기는 그보다 훨씬 길었다. 도중에 헤매기도 하고, 왕복하여 걷기도 하고, 정해진 길을 벗어나서 기웃거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4코스와 5코스를 한꺼번에 걷기로 한 날에는 5코스 출발 지점에서 얼마 안 가 '출입 금지' 팻말에 막혔고, 농암종택까지 되돌아와서 발을 벗고 강을 건너서 길을 이어 걸었다.
옛 영남 선비들의 고장 안동, 그중에서 도산면 곳곳에 남아 있는 선비들의 자취. 그 자취를 살피면서 걷는 길. 그렇게 걸으면서 무엇을 보았는가.
눈에 보였던 것들만 대충 적어 보자.
오천리 군자마을, 역동선생 유허비, 월천서당, 도산서원, 퇴계종택, 퇴계 묘소, 수졸당, 이육사문학관, 청량산 조망, 농암종택, 고산정, 왕모산, 월란정사, 번남고택, 계상고택, 성성재 종택, 이름 없는 고택들, 선성산성, 예안향교, 호계서원, 노송정, 온계종택, 용문교, 교적비, 수운정, 낙동강, 안동호. 264청포도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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