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목포 유달산]
2021. 3. 4. 21:05ㆍ전라
2021년 3월 4일 목요일. 이른 아침에 유달산에 오르다. 산수유, 매화, 생강나무가 여기에서 방긋 저기에서 방긋, 조용한 웃음으로 반긴다. 바람결이 풋풋하다. 봄기운이다. 오포대 앞세서 머뭇거리다가 둘레길로 들어선다.
채석 흔적. 일직선으로 점을 찍은 듯 작은 구멍들이 뚫린 바위 옆에 안내판이 있다. 바위에다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파고, 마른 나무를 박아 넣고, 물을 붓는다. 나무가 팽창하면서 바위가 갈라진다. 겨울철에는 그냥 물을 붓는다. 물이 얼어 팽창하는 힘에 돌이 쪼개진다. 고인돌이나 피라미드를 만들 때도 이런 방법을 썼다고 하며, 바위투성이 유달산에는 이런 흔적이 많다고 한다. 바로 옆 바위에는 그렇게 해서 돌이 떨어진 흔적이 역력하다.
다른 흔적들도 있다. 1982년 공원화 사업을 하기 전까지 산기슭에 살던 사람들의 흔적. 집이 있던 자리, 밭이었던 자리를 쉽게 짐작할 수가 있고, 무너진 돌담들이 보인다. 봉후마을 자리 샘터는 둘레길을 걷는 사림들의 쉼터가 되었다. 빨래터를 거느린 공동 우물이었다는 봉후샘은 온전한 우물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마을 자리에는 구유통이 버려진 채 뒹굴고, 농사에 요긴했던 똥구덩이 자리가 뚜렷하다고 한다. 여기 살던 사람들의 추억담이 있고, 망향의 아픔을 달래는 돌탑이 세졌다. 조선 영조 때 이인좌의 난에 가담했던 나숭대라는 사람이 명당 자리에 아비의 묘를 쓰고 왕을 꿈꿨다는 이야기의 흔적도 있다. 산책 나온 사람들 발길이 이어지는 길에 이러저러한 흔적들이 널려 있고, 길은 이리저리 갈라진다. 조각 공원이 들어섰고, 숲을 가꾸는 일손들 분주하다. 새로운 흔적을 남길 손길들이다.
십 리 남짓한 둘레길을 마치고 일등바위를 다녀온다. 유달산 정상이다. 높지는 않으나 바위산 험한 길에 훌륭한 계단이 놓였고, 아찔아찔할 정도로 스릴이 있다. 목포 시내가 한눈에 훤하고, 신안군 여러 섬으로 통하는 다리가 길게 떠 있는 바다가 훤하다. 노적봉이야 워낙 유명하여 말할 것도 없고, 일등바위, 이등바위, 고래바위, 나막신바위, 종바위 등등 그럴듯한 이름들이 많다.
목포 출신 가수 이난영을 기리는 '목포의 눈물 노래비'를 지나는데 가수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흐른다.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에 새악씨 아롱저진 옷자락..." 유달산과 더불어 목포의 상징이요, 전설이라 할 삼학도는 간척 공사로 육지가 되었고, 공원으로 꾸며진 모습이 번화한 도회에 섞여 내려다보인다. 아쉽다고 할까. "...리별의 눈물인가 목포의 서름..." 투둑투둑 빗방울이 듣는다. 목포의 눈물인가. 추적추적. 차분하게 내리는 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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