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산다[매창공원, 백산성, 무성서원, 상춘곡둘레길]
2021. 4. 14. 21:54ㆍ전라
2021년 4월 14일 수요일. 매창공원을 둘러보고, 백산성에 올랐다가 상춘곡 둘레길을 걷다.
이매창, 유희경, 허균, 전봉준과 농민군들, 최치원, 신잠, 최익현, 임병찬, 정극인 등등. 몸은 갔어도 이름이 남아 영원히 사는 사람들. 아니, 두고두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영혼들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영원히 산다는 말은 맞는 말인 것 같다. 다정다감한 혼, 거룩한 혼, 심오한 뜻을 가진 혼, 높은 학문에서 우러나는 혼, 훌륭한 뜻을 실천하는 훌륭한 혼.
1. 이화우 흩날릴 제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 최고의 여류 문인으로 꼽히는 이매창이 유희경을 그리며 읊었다는 시조. 절창이다. 시로 인생을 주고받던 이들은 첫 만남 후 15년 만에 짧게 만났다가 다시 헤어졌고, 3년이 지나 이매창이 죽었다고 한다.
이매창(李梅窓): 조선 선조 때 여류 시인. 한시와 거문고로 이름을 날림. 1610년(38세)에 죽었고, 거문고와 함께 묻혔으며, 전라북도 부안읍에 묘비와 상석을 갖춘 묘가 있다. 매창공원이다. 죽은 지 45년이 지난 1665년 묘비가 세워진 매창묘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65호. 1668년에 개암사에서 매창이 지은 한시 58편을 모아 간행한 '매창집'은 간송미술관에 두 권, 하버드대 도서관에 한 권, 세 권이 남아 있다고 한다. 매년 음력 4일 5일 부풍율회에서 묘제를 지낸다고.
오늘, 교동천습지와 연결된 매창공원엔 산책하는 사람들,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 나처럼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이 이리저리 오고 간다. 갈래길까지 빠짐없이 밟고 나서, 1Km쯤 거리에 있는 재래시장을 찾아 인절미 한 쪽으로 요기를 한다.
2.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
흰옷을 입고 죽창을 든 농민군들이
앉으면 죽창이 산을 이루고(竹山)
서면 하얀 옷이 산을 이룬다(白山)
해발 48m. 1894년 3월, 너른 평야 한가운데 나즈막이 솟은 백산에,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올린 농민군들이 모여들었다.
매창공원에서 무성서원으로 가는 길에 잠깐 올라 그 세월 그 사람들을 그려 본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백산성: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 동진강 서쪽 백산(48)에 있는 퇴뫼식 산성. 1976.4.2. 전라북도 기념물 제31호. 1998.9.17. 사적 제409호. 2011년에 '백산성'에서 '부안 백산성'으로 명칭 변경. 서기 660년에서 663년 사이에 쌓았고, 백제 부흥 운동 때 일본군을 맞이했던 곳이라고 한다. 건물을 짓기 위한 축대 흔적과 삼국시대 것으로 보이는 토기와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다고는 하나 근거가 확실하지 않고, 고대 성곽으로서보다는 동학혁명군이 봉기하였던 역사적 현장으로서 의의가 크다고 한다. 1894년 1월, 고부군수의 학정에 항거하여 일어난 농민군들이 3월 21일 백산에 다시 모여 전주 방면 진격하였다는 것. 그것이 동학혁명의 출발점이었다는 것.
오늘 나그네가 백산에 오르니, 사방으로 너른 평야가 아스라히 내려다보이고, 가까이에 동진강 물줄기가 뚜렷하다. 동학혁명의 주 무대였다는 동진강 유역이다.
3. 홍진에 묻힌 분네 이 내 생에 어떠한고
홍진에 묻힌 분네 이 내 생애 어떠한고
옛사람 풍류에 미칠까 못 미칠까
봄을 감상하는 노래, 상춘곡의 첫 구절. 봄이 무르익는 오늘, 상춘곡 들레길을 걷다.
둘레길에 앞서 무성서원을 둘러본다. 문화 해설사 한 분이 친절한 설명을 베푸신다. 서원의 내력과 건물 배치, 마을의 역사, 최익현과 임병찬이 이끈 호남 의병 창의 내력까지. 감사합니다.
무성서원: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신라 때 태산 태수 최치원의 생사당(生祠堂) 태산사와 조선 중종 때 태인 현감 신잠의 생사당, 조선 성종 때 정극인이 세운 향학당을 합쳐 태산서원이라 하다가 숙종 때(1696년) 武城(무성)이란 사액을 받은 후 '무성서원'. 사적 제166호. 2019년 7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 옥산서원, 도동서원, 남계서원, 필암서원, 돈암서원, 무성서원 등 9개 한국 서원 동시 등재)
정극인: 조선 전기 문인이자 학자. 말년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교육 활동에 힘씀. 이때 지은 상춘곡이 한국 가사 문학의 첫 작품이라고 한다.
둘레길을 찾는 이가 많지 않은 탓인지 무성서원 뒷산을 도는 정도만이 이정표와 길이 뚜렷하다. 정극인 묘소까지 이어지는 길은 이정표만 두엇 보일 뿐, 길은 숲에 막히고, 사유지 철조망에 막힌다. 정해 놓은 길만 길이랴. 이리저리 돌고, 헤매면서 묘소까지 둘러본다. 서원이나 상춘곡 뿐만이 아니라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을 기리는 비석과 몇몇 집안의 묘역과 불탑 등 유적이 많이 보인다. 봄이 주는 풍경 뿐만이아니라 마을을 둘러싼 산천 또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강 맘새김길[무주] (0) | 2021.05.11 |
---|---|
힐링인가[완주 봉실산] (0) | 2021.04.15 |
원시 밀림인가 비경인가[고창 운곡습지] (0) | 2021.04.13 |
흔적[목포 유달산] (0) | 2021.03.04 |
과학과 전설[목포 갓바위둘레길] (0) | 2021.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