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맘새김길[무주]
2021. 5. 11. 22:12ㆍ전라
2021년 5월 11일 화요일. 무주 향로산에서 그림 같은 풍경을 내려다본다. 강줄기에 둘러싸인 앞섬마을에서 연기 번지듯 비안개가 피어오르는 풍경. 저기가 선경인가. 사람의 손으로 저런 모습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까. 한참을 서서 넋을 놓고 바라본다.
전라북도 무주읍 내도리 앞섬. 금강 물줄기에 빙 둘러싸인 앞섬마을을 육지 속의 섬이라고들 한다. 안동 하회마을, 예천 회룡포, 영주 무섬마을이 그렇듯이. 홍천 금학산 위에서 보는 '산태극 수태극'도 그렇고, 육지 속 섬마을들은 건너편 산 위에서 볼 때 절경이다. 오늘은 비안개가 한몫을 거드니 금상첨화다.
예전에 바깥 세상으로 배를 건너던 자리에 지금은 시멘트 다리가 들어섰다. 무주 읍내 쪽이 전도교, 반대쪽 뒷섬마을로 건너가는 다리가 후도교이다.
뒷섬마을 아이들이 강을 건너지 않고 읍내 학교에 다니던 산길을 되살려서 '학교 가는 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휘어지는 강줄기를 따라가다가 작은 등성이를 넘어 복고사 절집을 지나 읍내 학교로 이어지는 길. 십 리, 이십 리 정도 걸어서 학교에 다니는 게 흔한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다. 깡촌에서 자란 나도 시오리를 걸어 중학교엘 다녔었지.
'학교 가는 길'에 이어서 무주 읍내 쪽으로 이어지는 '여행 가는 길', '학교 가는 길'에서 산등성이를 넘지 않고 강가로 갈라지는 '소풍 가는 길', 앞섬마을 강가로 내려서서 걷는 '강변 가는 길'. 네 길을 아울러 '금강 맘새김길'이라고 한다.
무슨 맘을 새기랴. 이 길을 걸었을 옛사람들의 하루하루를 상상해 본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곰곰이 뜯어 본다. 내가 살아오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면면을 떠올려 본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화면에 띄워 놓고 살펴 본다. 난이, 희제, 근제, 세 녀석들의 삶을 가늠해 본다. 부모 노릇 제대로 못했고, 지금도 그렇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 보니, 이제 어른이 된 녀석들. 각자 제 인생을 살아가겠지. 그건 그렇고,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정답이 없을 지도 모르는 영원한 질문이다. 아, 휘돌아 가는 강줄기와 말없이 흐르는 강물이 예쁘다. 강가 바위 절벽과 푸른 숲이 예쁘다. 산과 물과 하늘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깨끗하고 예쁘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가꾸는 논밭 또한 예쁘다.
향로산을 한 바퀴 돌고, 뒷섬마을까지 알뜰하게 다녀본 다음, 한풍루에 오른다. 국가 지정 문화재 '보물'로 지정이 되었단다. 지난달 20일 지정 예고되었다고.
무주 한풍루: 옛 무주 관아 앞 천변(지금 무주우체국 자리)에 있었고, 지금은 등나무운동장 옆에 위치. 1465년(조선 세조 11)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 임진왜란 때 소실, 왜란 직후 복원, 수차례 중수. 1910년 경술국치 후, 불교 포교당, 무주보통학교로 사용.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금강 가에 금호루 현판을 달고 옮겨졌다가 1971년 11월 15일 현 위치에 복원. 전주 한벽루, 남원 광한루와 더불어 호남 3한(三寒).
읍내 식당에서 김치찌개로 저녁 식사를 했다. 맛있는 부위 고기가 듬뿍 들어 있고, 모든 반찬이 깔끔하고 맛있다. 미련을 못 떨치고, 소주 한 병을 시킨다. 여기 소주로 주세요. 기분 좋은 뒤풀이. 가로등이 켜지는 어스름한 남대천 풍경이 한 풍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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