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울음소리에[이천 도드람산]
2021. 11. 25. 21:02ㆍ경기
돼지의 옛말 '돋'+울음+산=돋울음산>도드람산. 한자로는 猪鳴山(저명산).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자가 있었다. 어떤 의원도, 어떤 명약도 효험이 없다. 이를 딱하게 여긴 탁발 스님께서 석이버섯을 따다가 다려 드리라고 했고, 어머니는 위독한 고비를 넘겼다. 효자는 석이를 찾아 험한 바위를 오르내렸고, 어머니의 병세는 차츰 나아졌다. 어느 날, 효자가 밧줄에 매달려 석이를 따고 있는데 산돼지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상하게 여긴 효자가 급히 밧줄을 타고 올라와 보니, 돼지는 보이지 않고, 바위 모서리와의 마찰로 밧줄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효자의 지극한 효심을 가상히 여긴 산신령이 산돼지를 보내 효자의 목숨을 구하게 했다는 얘기다. 자연스럽게 설악산 대승폭포 전설이 떠오른다. '대승'이라는 총각이 밧줄에 매달려 석이를 따고 있을 때, 대승아~! 대승아~! 돌아가신 어머니의 음성이 들렸고,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급히 올라와 보니, 지네가 밧줄을 쏠고 있었더라는 이야기.
2021년 11월 25일 목요일. 경기도 이천에 있는 도드람산(348)에 오르다. 중부고속도로 서이천 나들목 옆 도드람사거리 옆에 있는 산. 사거리 옆, 산 아래에 '도드람산주차장'이 있다. 낙엽이 푹푹 밟히는 산길은 이리저리 갈라지고, 친절한 이정표가 있고, 팥죽바위, 석이약수, 돼지굴 등 안내판들이 있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팥죽을 쑬 때, 산을 한 바퀴 돌아 그 바위 앞에 오면 팥죽이 다 되었기에 팥죽바위라고 했단다. 그렇다. 뒷동산이라고 하기에는 뭐하겠지만, 그리 크지 않은 산이다.
산 윗부분은 온통 험한 바위투성이다. 1봉, 2봉, 3봉이 있고, 돼지굴이라고 하는 것도 커다란 바위 덩어리 옆구리에 뚫려 있고, '효자봉' 푯돌이 있는 산마루에도 온통 바위다. 옛날에는 저 바위에서 석이버섯을 얻었다는 얘기렷다.
산이 작은 만큼 산길도 길지가 않다. 갈라지는 길도 알뜰히 다니면서 여유를 부려 본다. 산책삼아, 운동삼아 걸을 만한 거리로 보인다.
"새로운 것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알베로니."
"녹은 쇠에서 생기지만 차차 그 쇠를 먹어 버린다. 마찬가지로, 옳지 않은 마음을 먹으면 그 마음이 사람을 먹어버린다. -법화경."
곳곳에 좋은 글귀들이 보인다. 마장면주민자치위원회에서 세운 것들이다. 이런 내용도 있다.
"승려는 도를 얻기 위해 산으로 가고, 심마니는 산삼을 캐기 위해 산으로 간다. 나는 산에 오르면서 건강을 얻고, 환희를 얻는다."
오늘, 나도 무엇을 얻으러 이 산에 온 것인가. 내가 산에 오르면서 바라는 것은 무엇이고, 얻는 것은 무엇인가.
서울에서 가까운 곳. 산위에서 보이는 사방 곳곳에 허연 건물들이고, 고속도로 등 여러 도로가 이리저리 내달린다. 돼지울음산. 산돼지 울음소리는 효자의 목숨을 구했다고 하는데, 끊임없이 들려오는 자동차 울음소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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