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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인가[완주 봉실산]
2021년 4월 15일 목요일. 봉실산에 오르다. 전라북도 완주군 군청이 있는 봉동읍 한쪽에 단정하게 솟아 있는 산. 장구리 주차장에서 옥녀봉(323)을 넘고, 봉실산(374) 꼭대기로 가는 산길이 참 좋다. 산마루에서 숨을 고르며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들판을 내려다보다. 가슴이 확 트이는 풍경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다가 가파른 길을 내려와 둘레길을 만나다. 학림사에서 약수 한 바가지로 목을 축이다. 처음 그 자리까지 숲속에서 이어지는 둘레길 또한 좋다. 산 빛도, 햇빛도, 바람결도 온통 봄빛이다. 이거야말로 힐링이 아니고 무엇이랴.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오늘이 바로 봉동 장날이다. 채소, 어물, 곡물, 과일, 과자, 떡, 전, 튀김, 국수, 순대, 풀빵, 잡화,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장바닥을 어슬렁..
2021.04.15 -
영원히 산다[매창공원, 백산성, 무성서원, 상춘곡둘레길]
2021년 4월 14일 수요일. 매창공원을 둘러보고, 백산성에 올랐다가 상춘곡 둘레길을 걷다. 이매창, 유희경, 허균, 전봉준과 농민군들, 최치원, 신잠, 최익현, 임병찬, 정극인 등등. 몸은 갔어도 이름이 남아 영원히 사는 사람들. 아니, 두고두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영혼들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영원히 산다는 말은 맞는 말인 것 같다. 다정다감한 혼, 거룩한 혼, 심오한 뜻을 가진 혼, 높은 학문에서 우러나는 혼, 훌륭한 뜻을 실천하는 훌륭한 혼. 1. 이화우 흩날릴 제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 최고의 여류 문인으로 꼽히는 이매창이 유희경을 그리며 읊었다는 시조. 절창이다. 시로 인생을..
2021.04.14 -
원시 밀림인가 비경인가[고창 운곡습지]
2021년 4월 13일 화요일. 고창고인돌박물관 주변에 널린 고인돌들을 둘러보면서 야트막한 고개를 넘다. 고개를 넘자마자 운곡습지를 만나다. 목재 데크로 된 탐방로를 걸으면서 놀라고, 놀라고, 또 놀라다. 원시 밀림인가, 저런 걸 비경이라고 하는가. 축축하게 물이 배고, 무논처럼 물이 고인 습지. 버드나무, 찔레 덩굴은 뚜렷한 숲을 이루었고, 일일이 이름을 헤아리기 어려운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마구 우거진 숲엔 이제 막 여린 연둣빛이 번진다. 연둣빛은 둠벙에도, 작은 못에서도 물감처럼 풀린다. 제멋대로 뻗은 나뭇가지도, 파릇파릇 돋아나는 풀잎도, 둠벙도, 작은 연못도, 물이 밴 땅바닥도 모두 신비로운 기운을 풍긴다. 습지를 벗어나면서 이어지는 길은 운곡저수지 둘레길. 저수지가 생각했던 것보다 제법..
2021.04.13 -
걷는 건지 흐르는 건지[충주 서운리순환임도]
주봉산 자락에 위치한 서운리는 서른, 서룬, 서운으로 불리었고,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었다. 일부는 마을 언덕으로 옮겨 살고, 많은 이웃은 정든 땅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수몰 25주년을 맞이하여, 마을의 역사와 전통, 문화유산을 후손에게 알리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수몰인들의 마음을 담아 망향비를 세운다. 2010년 11월 28일. 2021년 4월 8일 목요일. 충주시 동량면 서운리. 고향 노래비(제목: 주봉산)를 보고, 망향비를 보다. 포탄리, 함암리, 명오리, 호운리, 사기리. 서운리와 함께 물에 잠긴 이웃 마을들. 모두가 물에 잠겼고, 서운리 '일부가 마을 언덕'으로 옮겨 살고 있는 셈이다. 서운리 마을 끝에서 임도로 들어서다. 흐드러져 눈부시는 벚나무, 흩날리는 꽃비, 서서히 신록을 채..
2021.04.08 -
추억[충주 수주강변길]
카톡! 카톡! 엊그제, 참으로 오랜만에, 참으로 멀리에서 오는 카톡을 받았다. 30여 년 감감무소식에 간 곳을 모르던 친구. 야,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냐. 그래, 반갑다. 진짜 오래간만이다. 미안하다. 어디냐. 잘 지내고 있지. 내년 초에 귀국한다. 그때는 볼 수 있는 거냐. 그럼. 건강해라. 함께 졸업한 애들이 50명은 되었던가. 조그마한 산골 국민학교(초등학교), 동창 녀석 하나. 남자애들 모두 제대하고 난 어느 동창회 때, 부산에서 올라왔었지. 그러고 나서 2~3년 지난 다음부터 연락 두절. 형제들도, 사촌들도, 그 누구와도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배를 탄다던가, 어렴풋한 짐작이 있는 정도였다. 수주 강 건너 자사골에 살던 친구. 2021년 4월 5일 월요일. 오후에 잠깐, 수주 강변을 걷는다...
2021.04.05 -
산골짝이든 바닷가든[마산 무학산]
고려 중엽, 마산 포구 이씨 집안에 편모슬하에 열일곱 살 큰딸과 둘째 딸, 막내아들이 살고 있었다. 어머니가 고질병으로 눕게 되자 살길이 막막해졌다. 고개 너머 감천골 천석꾼 윤 진사에게는 반신불수 벙어리 아들이 있었다. 윤 진사가 큰딸을 며느리로 욕심을 낸다. 어머니는 한사코 만류하나, 큰딸은 가족의 생계와 어머니의 병환 걱정에 그예 시집을 간다.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가혹한 시집살이를 하는 큰딸. 삼 년만에 남편과 함께 친정 나들이에 나선다. 고갯마루에서, 남편은 자신의 흉한 모습을 처가에 보여주기 싫다면서 아내의 등을 떠민다. 친정은 시댁의 도움으로 살림이 넉넉해졌고, 어머니의 병환도 완쾌되었다. 아내가 고갯마루에 되돌아와 보니, 남편은 머리를 바위에 부딪쳐 피범벅이 되어 죽어 있다. 큰딸은..
2021.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