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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푸른 초원에서[몽골고원]
2023년 8월 19일 토요일. 몽골 테를지 국립공원에 있는 게르에서 눈을 뜨다. 러시아제 특수차량(푸르공)에 몸을 싣는다. 덜컹덜컹, 흔들흔들. 끝없이 펼쳐지는 고원 속을 헤집는다.가끔 차를 세워두고 이리저리 거닐어 본다. 너울너울 멀어져가는 푸른 풀밭을 보고, 티 하나 없이 푸르디푸른 하늘을 본다. 가끔씩 부풀어오르는 구름 빛깔은 더없이 희다. 맑은 바람결에 넋을 맡긴다.고원에서 자라는 온갖 풀이 꽃을 피웠다. 구절초도 보이고, 벌개미취도 보인다. 모두가 땅에 바짝 붙은 난쟁이들이다. 해발 고도가 높은 곳이고, 모래나 자갈 위에 흙이 얇게 덮인 땅이기에 나무가 자랄 수 없고, 모든 풀도 키가 작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난쟁이들이 하얗거나 노랗거나 등등, 저마다의 빛깔로 꽃을 피웠다. 풀잎에도 꽃잎에도..
2023.08.22 -
소리길[합천 해인사 소리길]
狂奔疊石吼重巒 人語難分咫尺間 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 崔致遠 미친 듯 달리면서 바윗돌에 부딪혀 산을 울리니 지척에서 하는 말도 알아들을 수 없으리 혹시라도 아귀다툼 소리 들려 올까 봐 흐르는 물소리로 산을 감싸는가. 대강, 이렇게 새기면 되겠다. 최치원이 세속을 벗어나 가야산으로 들어설 때, 홍류동 물가 바위에 앉아 읊었다고 한다. 당시 어수선한 시국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인가. 그를 산으로 들어가게 한 것은 어떤 소리였을까. 산에서 그가 즐긴 소리는 어떤 것이었을까. 인간 세상에서 나는 소리 중 대표적인 게 정치권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닐까. 대놓고 악다구니를 주고받는 요즘 한국 정치권은 어떠한가. 산속에 파묻히면 그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으려나. 아니, 아직도 그런 소리들에 연연하는가. 그냥 걷자...
2023.07.30 -
산내 암자 둘레길[합천 해인사]
가야산 해인사 산내 암자는 모두 열여섯이다. 이 중, '본절'이라고도 하고, '큰절'이라고도 부르는 해인사에서 비교적 가까이에 있는, 크게 보아 이웃으로 볼 수도 있는 열두 곳을 다녀 보기로 한다. 나머지 넷(청량사, 길상암, 고불암, 고운암)은 거리도 좀 있고, 이미 다녀온 곳들이기에 이번엔 생략하기로 한다. 2023년 7월 28일 금요일. 이른 아침에, 해인사 일주문에서 가장 가까운 금선암에서 출발한다. 금선암-원당암-홍제암-용탑선원-(해인사 일주문)-백련암-희랑대-지족암-국일암-약수암-금강굴-보현암-삼선암-금선암. 7.82Km. 가파르고 좁은 산길이 모두 포장도로인 것은, 깊은 산속까지 자동차를 이용하기 위해서이리라. 나보고 운전을 하라고 하면, 선뜻 나서기가 어려울 곳이 많다. 아주 가파르게 굽이..
2023.07.28 -
고불암 가는 길[가야산 해인사]
해인사 고불암은, 합천 가야산 자락 해발 900m에 위치하며, 해인사 산내 암자 열여섯 중 기장 높은 곳에 있는 암자라고 한다. 2023년 7월 26일 수요일.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 주차장에서 고불암을 향하여 걸음을 뗀다. 길은 가야천을 옆에 끼고 거슬러 올라간다. 중간에, 길이 500m쯤 되는 자연관찰로를 이용할 수도 있다. 고불암에 납골당과 수목장이 딸린 탓인지, 좁은 산골 도로에 자동차들이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산과 들을 걷는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포장도로이고, 줄곧 오르막길을 돌고 도는 길이지만, 깊은 산속이고, 숲길이다. 급할 것도, 서두를 일도 없으니 한 걸음 한 걸음이 여유로울 뿐이다. 암자를 안내하는 화살표가 유난히도 많은 것을 본다. 고운암, 중암, 관음암, 수월암, 오도..
2023.07.26 -
학사대[합천 해인사]
2023년 7월 23일 일요일 아침. 흐린 하늘을 헤치며 해인사 경내를 산책하다. 비 예보는 있지만, 온통 푸르게 우거진 산빛이 좋고, 산속 공기가 좋다.장경판전 앞에 있는 학사대, 그냥 지나치려다 안내판을 들여다본다. 아!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그 오랜 내력을 가진 전나무와 그 고목 밑동으로 만든 최치원 상의 좌대와 그 가지들로 만든 의자들. 그러고 보니, 다시 뵈는 최치원 상의 그윽한 모습. 감동이다. 감동을 제대로 표현할 재간이 없다. 그래, 애쓰지 말고, 그냥 느껴라.안내판 내용에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보태어 간추려 보는 것으로 대신하자.신라 말기 대학자이자 문장가인 최치원은 말년을 합천 해인사에서 보냈다고 한다. 어느 날, 문필 활동을 하며 머물던 곳에다 전나무 지팡이를 꽂아 두고 자취를 ..
2023.07.23 -
보물[합천 해인사 마애불]
합천 해인사 마애불 공식 명칭은 합천 치인리 마애여래입상 보물 제222호. 2023년 7월 22일 토요일. 예보대로 비가 쏟아지려나. 아침나절에 한두 방울 떨어지긴 했지만, 하늘 표정은 그리 험악해 보이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나서, 그래도 장마철인지라 우산을 챙겨 들고 나선다. 해인사 일주문 앞에서 왼쪽으로, 다시 오른쪽 비탈길을 오르다 보니, 마애불 2Km 이정표가 보인다. 망설임 없이 들어선다.길은 잘 나 있다. 여름철이고, 오르막 산길이니 땀이 좀 흐르기는 하나, 우거진 숲에 묻힌, 아주 좋은 길이다.해발 1,000m쯤 된다던가. 해인사 뒤쪽으로 가야산 산속 높은 곳에 숨은 듯 서 있는 마애불. 말 그대로 바위에 새긴 부처님 상이다. 돋을새김을 하였고, 살진 얼굴에 균형 잡힌 몸집, 건장한 모습이..
2023.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