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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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도 보고 뽕도 따고[원남저수지둘레길]
2020년 11월 7일 토요일. 이웃에 사는 이 선생과 함께 음성읍 삼생리 사향산 기슭에 있는 박 선생 농장을 찾았다. 어린 호두나무들, 추수를 끝낸 들깨밭, 남새밭, 당귀, 더덕 등. 닭장과 토끼장. 왕딸기나무와 메리골드 등 꽃단장을 한 진입로. 컨테이너로 꾸민 농막과 간단한 가재도구들. 커다란 느티나무를 닮은 밤나무, 농장을 둘러싼 숲에 내려앉는 가을빛, 서늘한 산 공기. 세상 이야기, 사는 이야기, 종교 이야기, 인생철학. 양념으로 섞이는 허풍과 농담. 한동안의 자리를 털고 원남저수지로 간다. 삼생리(농장)-삼용리-조촌리까지는 마을길, 자동차 도로, 둑방길을 번갈아 걷는다. 추수를 마무리짓는 손길도 있고, 휴일을 맞아 가족이나 친지들이 어울리는 풍경도 있고, 나그네 발길도 있다. 단양 장씨, 광주 ..
2020.11.07 -
단풍은 곱건만
하늘은 맑건만 문기는 하늘을 맑게 바라볼 수가 없다. 고깃간 주인이 잘못 거슬러 준 돈을 되돌려 주지 못하였고, 친구의 꼬임에 휘둘리며 괴로워한다. 끝내 맘속 부담을 떨치지 못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삼촌에게 그동안의 잘못을 고백하였고, 그제야 문기의 마음은 가벼워진다. 현덕의 소설 '하늘은 맑건만'에 나오는 얘기다. 1930년대 후반에 나온 소설이다. 충주에서 원주로 가는 19번 국도 양옆으로 펼쳐지는 산을 물들인 단풍 빛깔이, 가을 하늘 맑은 빛에 앞서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방이 온통 곱게 타오른다. 가슴이 벌렁거릴 일이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을 지그시 누르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밤 잠결에 못된 꿈이 섞이긴 했었지. 요즘 까닭 없이 화를 낼 일이 있었던가. 마음을 더듬고 더듬는다. 2020년 ..
2020.10.31 -
의림지 뒷산[제천 용두산]
산의 형세가 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용두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곳곳에 있다. 부산, 인천, 이천, 진천 등등. 제천 용두산(873)은 제천의 진산이라고 하며, 산 아래에 의림지, 제2의림지, 솔밭공원이 있다. 캠핑장이 있고, 한방둘레길이 있고, 여러 유락 시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제천의 명소가 되었다. 2020년 10월 10일 토요일. 제천 족구장 길 건너편 솔밭공원. 1980년, 마을 사람들과 의용소방대 80여 명이, 아카시아나무를 캐내고, 손수레와 등짐으로 돌밭을 일구고, 주위 소나무들을 옮겨 심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3개월 남짓 비지땀을 흘렸단다. 4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아주 훌륭한 솔숲이 되었다. 소나무는 저마다 멋들어진 모습이고, 공기는 청정하고, 숲속은 신선하다. 이리저..
2020.10.10 -
그림 속에서 나온 노인들[옥천 도덕봉-덕의봉]
담벼락마다 옛날 생활 모습이 그려져 있고, 골목에서 어쩌다 만나는 노인들은 금방 그림 속에서 나오신듯 하나같이 정겹고 친절하시다. 2020년 9월 26일 토요일.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면사무소에서 백운리 쪽으로 도덕봉을 향하여 가는 길이다. 산도 마을도 들판도 청산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맑고 깨끗한 모습이다. 높고 푸른 하늘도 하얀 구름도 맑은 공기, 맑은 햇빛과 어울려 더없이 맑고 깨끗하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푸른 산에는 흰구름이 없는 데가 없고, 흰구름 있는 곳에 푸른 산이 없는 곳이 없다고 했단다. 그래서 청산면이고, 백운리라고 했단다. 높지 않은 봉우리가 하나의 산등성이에 떨어져 솟아 있다. 도덕봉(544)이고, 덕의봉(491)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도랑이 있고, 마을이 있고, 장터가 있다..
2020.09.26 -
새로운 길을 만나다[아산 봉수산]
2020년 9월 12일 토요일 이른 9시 40분. 아산시 송악면 지풍골. 봉곡사 주차장에서 하늘 본다. 예보와는 달리 쉽게 그칠 비가 아니다. 그래, 절집부터 보자. 봉곡사로 가는 길은 아름드리 소나무 숲속으로 나 있다. 여기저기에 제멋대로 서서 제멋을 부리는 소나무들. 아니, 소나무는 그냥 거기에 서 있는 거고, 내가 내멋대로 느끼는 건가. 모르겠다. 봉곡사 만공탑 앞에서 길을 정한다. 그리 험하지 않은 산길. 그래도 빗길이라 조심조심. 빗물에도 젖고, 땀에도 젖는다. 산등성이에 베틀바위가 있고, 전설이 있다. 전쟁이 끝나고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고, 베를 짜며 남편을 기다리다가 머리가 하얗게 센 아내는 베틀과 함께 바위가 되었다. 옛날에, 전쟁이 나면 사람들이 숨어들어 베를 짰다고 한다. 우산도 비옷..
2020.09.12 -
땀을 흘리다[금산 닥실 마을]
다른 게 없다. 오로지 땀을 흘리러 간다. 비지땀으로 몸과 맘의 찌꺼기를 씻으러 간다. 그래, 거기로 가보자.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닥실 마을. 높지 않은 산등성이에 포근하게 빙 둘러싸인 마을이다. 마을 앞에는 금강이 흐르고, 옛 닥실나루터가 있다. 폐교된 금강초등학교 자리에 국민여가오토캠핑장이 들어섰고, 금강생태과학체험장이 있고, 둘레길이 생겼다. 금강솔바람길이다. 봉황술래길, 고향술래길, 솔바람길, 셋으로 되어 있고, 마을길과 산등성이 길로 이어진다. 금강초등학교 교적비가 있는 캠핑장 앞에서 걸음을 시작한다. 마을길은 땡볕이고, 산길은 풀숲이고, 거미줄이 더러 있지만, 비지땀을 원 없이 흘리니 좋다. 반바지 차림을 한 탓에 맨살로 풀숲을 헤치기도 하고, 이정표를 제대로 읽지 못해 길을 헤매기도 하지..
2020.08.29